테토론 코지마 단두대에 올리다 _ 청바지 터닝포인트 이야기

테토론의 탄생은 1958년에 인조견사 ( 人造絹絲 ) 제조업체 테이진 ( 帝人株式会社, TEIJIN LIMITED ) 과 토레이사 ( toray社 ) 공동으로 폴리에스터 ( Polyester, PE ) 섬유 테토론 ( テトロン, Tetoron ) 의 개발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테토론 ( 테이진의 테 와 토레이의 토 가 합성된 조어 ) 이라는 폴리에스터 섬유는 엄청난 발명품 이어서 기존의 코지마 면직물 이나 비닐론 같은 합성섬유들의 입지를 가차없이 밀어내고 맙니다.

최고의 발명품을 손에 쥔 도레이와 테이진은 누구에게도 이 발명품의 섬유을 공급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코지마의 우수한 면 직물 기업들이 그 흐름을 따라 갈 수 없는 처지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이 세계 청바지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됩니다.

 

 

코지마
오카야마의 보석

 

 

코지마 지역은 16세기에 바다를 매립한 오카야마 남쪽의

세토내해 ( 세토 지역의 안쪽으로 깊게 들어와 있는 바다 : 부산항에서 오사카로 가는 페리를 타면 세토대교 아래를 지나는 해로를 이용합니다 ) 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지마의 땅은 염분이 너무 높아 쌀을 재배할 수 없었기 때문에 현지 농부들은 대신 목화를 재배했습니다.

그리고 그 면화덕에 면제품을 많이 생산하는 오카야마 직물 산업이 탄생했습니다.

그때문에 코지마의 직물산업은 폭발적인 수요에 힘 입어 더 없는 호황을 보내고 이어진 세계대전과 한국전쟁등 전쟁의 시대뿐 아니라 전후 교복산업에도 9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며 오카야마 지역의 경제를 견인 합니다.

 

 

코지마의 청바지

 

그러나 20세기 초에 합성 섬유가 등장하고 일본 전통 의상에서 벗어나는 추세에 따라 오카야마는 따라갈 새로운 사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도쿄의 유흥가와 거리에서 청바지를 입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비번인 미국 군인들의 이미지가 전후 상상력을 사로잡으면서 등장한 아이템은 데님이었습니다.

코지마의 기존 면제품 시장 지배자 였던 마루오 클로싱은 테토론의 등장으로 내리막을 걷기 시작하며 존립의 위기에 처하며 유명무실해진 코지마의 면사업을 위해 사활을 걸고 신 사업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때 기적과 같이 기회를 접하게 됩니다.  바로 청바지 였습니다.

 

 

청바지를 만들자

 

 

마루오 클로싱은 청바지를 만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시작합니다.

우선 원단, 청바지 원단을 구하기 위하여 리바이스에 원단을 공급하는 미국업체 ‘콘 밀스’와 거래를 트기 위하여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다시 미국의 ‘칸톤 밀스’ 라는 업체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칸톤밀스’ 의 청바지 원단재고도 일본에 있었던 것 입니다.

그 ‘칸톤밀스’ 청바지 원단 재고를 가지고 있는 ‘오이시 트레이딩’ 이라는 일본 업체와 연결이 된 것 입니다.

‘오이시 트레이딩’ 은 ‘칸톤’ 이라는 브랜드로 일본 내수용 청바지를 생산하기 위해 도쿄에 봉제 공장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수입된 ‘칸톤 밀스’의 청바지 원단이 남아 있었던 것 입니다.

마루오 클로싱은 오이시 트레이딩과 계약을 맺고 일본의 간사이 지역에서 청바지를 생산화고 판매하기로 합니다.

 

 

바늘도
안 들어가는 놈

 

 

코지마의 공장에 납품된 14.5온스의 데님은 마루오가 가지고 있는 재봉틀 ( 미쓰비시 주키 ) 로는 바느질을 할 수 없었습니다.

바늘을 바꾸어 시도 했지만 뚫을 수 없었습니다.

마루오는 이 상황을 타개 하기 위하여 아예 미국에서 재봉틀 ( 유니언 스페셜 재봉틀 ) 을 가져 옵니다.

 

거기에 청바지 특유의 오렌지색 바느질용 실 , 구리 리벳 ( 스코빌 ) , 금속제 지퍼 ( 탈론 ) 까지 모두 수입하게 됩니다.

드디어 마루오는 칸톤 청바지를 1965년에 생산합니다.

그러나 칸톤 청바지는 기존에서 일본에서 소비되던 중고 청바지 처럼 부드러운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빳빳한 신품 원단은 시장에서 그리 환영 받지 못했습니다.

 

 

빨아버리자

 

 

빳빳하다면 빨아서 부드럽게 만들어 버리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확실한 방법이었습니다.

세탁기에 돌려 부드럽게 만들고 색을 빼는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몇일간 청바지를 돌리고 돌린 세탁기는 고장이 나 버렸습니다.

코지마의 세탁업체에 이 작업을 위탁 했지만 세탁기가 모두 망가져 버리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청바지를 도랑에 던져 놓기도 하고 바위와 기둥에 걸어 말리기도 하는 작업이 계속 되었습니다.

조금씩 매출이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사업에는 미치지 못했고 대체사업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도쿄의 대형 백화점 납품을 뚫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백화점의 구매 담당자는 한 번 세탁된 청바지를 보고 경악했다고 합니다.

새제품을 파는 백화점에 빨고 가져온 원 워시 청바지가 설득 될 수 있는 포인트가 없었고 도쿄의 암시장이나 미군용품점에 있을 법한 불경한 물건이 백화점의 자리를 차지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드디어
청바지의 시대를 열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온갖 사연을 만들어 내던 청바지가 숱한 과정을 거치면서 드디어 백화점에 납품을 시작 했습니다.

1965년, 코지마의 Big John이 생산한 최초의 일본 청바지가 매장에서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곧 더 많은 일본 청바지 제조업체들이 이 싸움에 가담했고, 허우적거리는 오카야마 직물 산업은 새롭게 떠오른 남색 돛을 타고 신선한 바람과 함께 얕은 바다에서 나타났습니다.

 

 

코지마의
청바지 스트리트

 

 

거리를 걷다가 청바지 테마가 표현된 영리한 방식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동 판매기부터 공공 재떨이까지 모든 것이 데님을 모티브로 했으며, 거리 자체에는 청바지 노렌 ( 가게 입구 위에 걸려 있는 전통적 짧은 커튼 ) 이 여러 곳에 펼쳐져 있습니다.

2009년 11월 청바지 스트리트가 시작됐을 당시에는 모모타로 진, 다니아 재팬, 움 3개 매장만 있었습니다.

이제는 더 많은 기업이 입주하고 Jeans Street가 데님에 집착하는 즐거운 성격을 점점 더 많이 갖게 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코지마 청바지 스트리트의 연간 방문객 수는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으며, 그 숫자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모습은

 

 

우연의 일치로 Jeans Street를 따라 세심하게 보존된 옛 시대 건축물은 청바지가 처음 시장에 출시되었을 때 일본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옛건물 ( 쇼와 시대 _ 일본의 연호 ) 의 옛 은행과 우체국 건물도 상점으로 개조되었습니다.

그 동안 빈 공간을 축제 분위기로 유지하기 위해 일부 건물주들은 셔터를 청바지 테마의 벽화로 칠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맞춤 제작된 데님을 손에 넣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Momotaro Jeans는 Jeans Street에 있는 매장에서 직접 구입할 수 있는 주문 제작 청바지를 제공합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더 깊은
스토리 텔링으로
빛날 것

 

 

모든 데님 애호가는 최고의 청바지가 완전히 길들이는 데 수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직물의 퇴색과 주름은 착용자와 이를 만든 장인 사이의 공동 표현이 됩니다.

청바지 전문 거리가 동일한 유서 깊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코지마는 스토리 텔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것이 확실합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심리가 더 매력적이고 흥미있는 장소로 다가 올 것입니다. 머지 않아 더 빛나게 될 코지마로 여행을 가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길들여지고 스토리가 켜켜이 입혀지는 곳을 직접 목격하는 것 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으니까요 ^^

 

코지마

 

 

1 thought on “테토론 코지마 단두대에 올리다 _ 청바지 터닝포인트 이야기”

Leave a Comment

error: Content is protected !!